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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전국 어린이 사진전 60돌 기념 회고전](5회) 주영환 작 '고아의 기도'(1959년)
예스대디 27.100.224.41
2016-05-16 08:05:43
전쟁의 참상, 한 끼의 죽에 바친 기도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5회 추천 주영환 작 ‘고아의 기도’(1959년)
 
      

전쟁은 비참하다.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처음부터 대한민국에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자력으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는 한 대의 전차도 전투기도 없었다. 반면에 북한군은 242대의 전차와 226대의 전투기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북한군은 전투기의 지원을 받으며 전차를 앞세워 빠른 속도로 밀고 내려왔다. 그들은 2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1개월 만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광복 5주년 기념일에 서울에서 성대한 행사를 통해 ‘통일인민정부’를 수립한다는 게 최종 목표였다. 마침내 서울을 적들에게 빼앗겼고, 국토의 대부분이 유린되었다.

대구와 부산지역만이 남았다. 낙동강 전선을 중심으로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우리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 당시 대구지역은 전쟁 수행의 중심에 있었다. 전선의 상황이 긴박해지자 정부가 옮겨왔고, 육군본부와 2군사령부가 자리 잡았다. 거리에는 피란 봇짐을 짊어진 사람들로 넘쳐났고,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냈다.

그해 가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상황이 뒤바뀌기 시작하였다. 유엔군의 지원을 받으며 차츰 전세를 회복하였고, 전선은 밀고 밀리는 가운데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이산가족이 1천만 명, 전쟁미망인이 30만 명, 전쟁고아가 10만 명, 그리고 사망한 군인이 18만 명에 이르렀다.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다.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였다. 수용시설은 턱없이 부족하였고, 그나마 수용된 아이들에게 한 끼의 밥을 먹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나없이 한 그릇의 밥이 절실하던 시절이었다.

유엔의 원조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줄을 서서 우유나 옥수수가루로 쑨 멀건 죽을 한 그릇씩 받아서 연명하였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먹고 나서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다. 더러는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해외로 떠나기도 하였다.

◇ 1959년

▷태풍 사라호 참사=제14호 태풍 사라호가 1959년 9월 11일 발생해, 9월 17일 부산부터 직접 영향권에 들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800여 명의 사망자와 배 9천329척, 주택 1만2천366동이 파손됐다.

 

▷재일교포 북송=일본 적십자사와 북한 적십자사가 1959년 8월 인도 캘커타에서 만나 ‘재일교포 북송협정’을 체결했다. 12월 14일 재일교포 제1진 975명을 태운 북송선이 일본 니카타항을 출발했다. 이후 150여 차례에 걸쳐 8만여 명이 북송됐다.

▷제1회 근로자의 날 행사=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 의욕을 높이며, 노사협조 분위기를 진작시켜 노사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근로자의 날을 제정했다. 1959년부터 기념행사를 실시해 오다가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명칭이 ‘근로자의 날’로 변경되었다.

 

수필가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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