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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ㆍ일 병행한 고행의 3년… 알바 하다 과로로 쓰러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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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9 21:44:34

 

 

최현민(가명)씨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서울 신대방동의 작은 일본식 선술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최현민씨 제공

 

2015년 2월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퇴소한 최현민(22ㆍ가명)씨는 생활비, 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과로로 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다.

 

널브러진 편의점 물건들 사이 쓰러진 그를 깨운 건 손님이었다. 최씨는 이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루 쉴 수 있었다.

평범한 청년들도 힘든 시기, 더구나 기댈 가족 한 명 없이 공부하고 일하고 꿈을 향해가는 생활은 고행과 다름없다. 서울의 한 패션전문학교 4학년인 그에게, 노동은 곧 생존과 직결됐다. 학기 중에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오후 11시~ 오전 7시)뒤 3~4시간만 자고 학교 수업을 소화했고, 주말에는 일당 5만~8만원을 받고 백화점과 아웃렛 의류매장에서 추가로 일했다. 그렇게 월 120만~200만원을 벌어야 등록금(학기당 350만원)과 생계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전문학교라 국가장학금이 없다. 그래도 편의점에서 시험공부를 하며 휴학없이 4점대 평균 학점을 유지했다.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최씨는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쓰러져 치료비만 100만원 넘게 나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래처럼 부모에 기댈 수 없어 지역가입자로 월 8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게 부담인데, 병원에서 3만~4만원씩 내는 의료비도 크게 다가왔다. 그는 “차라리 어머니와 호적을 정리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경제적으로 속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라고 덧붙였다.

6세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 밑에서 자란 최씨는 2004년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 이름조차 희미했던 그는 퇴소 직전 주민등록등본에 남아있던 어머니 주소로 편지를 보내면서 어머니와 극적으로 재회했다. 하지만 평생 혈육의 온기를 나누지 못한 탓에 정서적ㆍ금전적 갈등을 겪으면서 1년여만에 집을 나왔다. 이후 친구집을 전전하다 지난해 2월 같은 보육원 출신 네명이 함께 살고 있는 자립형 그룹홈에 들어왔다. 최씨는 “갹출해서 내는 월 생활비 10만원을 제외하면 주거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라며 “다른 퇴소자들이 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에 비하면 나는 운이 매우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옆을 볼 새 없이 달려왔던 최씨도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그는 “방학 특강 때 다른 친구들이 ‘방학 때 뭐하고 놀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라며 “방학은 ‘아르바이트하기 좋은 때’란 생각밖에 없었는데 친구들은 선택지가 많다는 걸 체감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 1월에야 친구들과 함께 태어나 처음 일본 도쿄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경비 5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6개월간 생활비를 쪼개야만 했다.

지금도 자신이 지냈던 보육원을 찾는다는 최씨는 동생들에게 늘 “정신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시행착오 탓이다. 그는 퇴소 당시 후원금(800만원)과 서울시 자립정착지원금(500만원) 등 총 1,800만원에 어머니까지 찾은 탓에 다른 퇴소자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매달 집에 보탠 생활비와 억눌렸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 등에 첫 6개월만에 500만원을 썼고, 등록금과 과제를 위한 노트북(100만원), 생필품, 의류 구입에 지출하다 보니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최근 졸업작품 제작에 목돈이 나가게 되면서 현재 그는 130만원의 빚을 안고 있다. 최씨는 “단체생활에 지쳐 퇴소 후 절제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돈 떨어지면 하루 택배 상ㆍ하차 아르바이트하고 다시 놀러 나가면서 돈 없다고 나라 탓하는 건 모순”이라고 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어디든 일단 취업해 돈을 버는 게 생존을 위해 가장 안전한 길이지만, 보육원 출신들이 대학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일까. 최근 좋은 일이 있었다. 지난 1년여간 오후 6시~오전 1시 아르바이트했던 서울 신대방동의 일본식 선술집을 위탁경영 할 수 있게 된 것. 덕분에 한 달 100여만원 남짓 받던 그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사장에게 주고 남은 부분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지난 3년간 의류매장, 편의점, 술집 등 매일 저임금 아르바이트의 굴레를 맴돌던 그에게 처음으로 소득을 늘릴 기회가 찾아왔다. 최씨는 “상금과 패션회사 입사 기회로 연결되는 디자인 공모전 지원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라며 “하루만 아르바이트를 쉬어도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이젠 저축도 생각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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